[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 오늘 책을 팔아 ‘덕력’을 쌓았습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 오늘 책을 팔아 ‘덕력’을 쌓았습니다
2017년 3월 17일 kpm21
In 저널

-김인혜 운영자의 더폴락 운영기

 

 
(출처: 더폴락 인스타그램)

겨울에는 추우니까 방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아서 ‘언제 몰아봐야지’ 했던 김한민 작가님의 책을 모두 읽기로 결심했다. 이미 책방에 입고되어 있는 『카페 림보』와 이를 연극화하며 기록한 연극일지 『책섬』(이상 워크룸프레스)을 읽으면서 반해있었다. 『카페 림보』는 34살이 되면 죽거나 ‘바퀴족’이 되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종족 ‘림보족’의 투쟁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이다.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이를테면 사회에서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잉여들을 대변하는 림보족, 사회의 일반적 성공을 추구하며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퀴족.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회에 대한 은유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독립출판 관련 전시를 할 때 출판사 측에 허락을 구하고 『카페 림보』의 구절 일부를 발췌해 시트 작업을 한 적도 있는데, 어찌도 이리 적확하게 독립출판신(scene)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림보족이 사회에서 삐져나온 이들이면, 독립출판신 역시 기존 출판신이 영토화하지 못해 삐져나온 것이니 그럴 수밖에. 읽다보니 더 반해서, 저작들뿐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나나 프로젝트5』(안그라픽스)를 사고, 그 밖에도 김한민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한 책들도 모았다. 북디자이너들이 각기 한 권씩을 맡아 작업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까지 중고시장을 뒤져서 획득했다. 모두 한 권 이상을 사서 한 권은 가지고 나머지는 책방 한쪽 책장에 진열했다. 책방을 찾는 이들이 김한민 작가 코너를 좋아하면 나도 덩달아 흥이 났다. 그 코너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가 있으면 괜히 가서 설명을 보태기도 하며. 역시 ‘덕력’은 소장하고 나누는 데서 배가되는 것 아닐까.

그래픽노블과 독립출판, 여집합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래픽노블에 눈이 갔다. 서점에서는 2015년부터 미메시스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일부를 소개하고 있었고, 총판과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세미콜론에서 발행한 그래픽노블들도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이, 차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한민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월간 그래픽노블> 11호를 읽으면서는 작가의 추천작 리차드 맥과이어Richard McGuire의 『Here』을 만나봤고, 그래픽노블 100선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는 <월간 그래픽노블> 1, 2호를 가이드 삼아 흥미가 가는 것부터 구해 읽었다. 절판본들은 중고로 구매해 읽었고,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작가는 한국에 출간된 다른 작품도 찾아 읽으면서 맛을 들였다. 그래 봤자 그래픽노블 팬으로는 초짜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어쩜 이리도 멋진 작품들이 많은지 더 자주 구매 충동에 휩싸였고, 번번히 충동에 졌다.
1, 2월에는 화장실 갈 때는 물론이고, 술 먹으러 갈 때도 점퍼 주머니에 한 권씩을 꽂아갔다. 사회의 실상과 단면을 보여주며 진실을 포착하는 르포르타주,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그대로 문학적으로 그려지는 작품들, 그래픽 자체가 압도적이고 대사나 서술 이상의 역할을 해 경도될 수밖에 없는 작품들, 또 놀라운 구성방식으로 기존 관념을 전복하는 실험적 작품 등. 좋은 책이 많아서 얼마 되지 않는 가산을 탕진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앙꼬 작가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수상 소식을 들으며 덩달아 즐거워하고, 다니구치 지로 작가의 별세 소식에 아쉬워했다. 두 달간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그래픽노블에 꽂혀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러면 어떤 것을 그래픽노블이라고 말하냐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뭐라 말하는 게 좋을까 하다 흔히 보는 만화와 좀 다른 것이고, 일종의 여집합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초짜 팬의 이 표현이 맞긴 한 것인가 조금 불안했다. 그러다 월간 그래픽노블에서 “여집합으로서의 만화들”이라는 표현을 발견했을 땐 신기하고 즐거웠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떤 것을 독립출판이라고 말하냐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서점을 시작한 초기에는 <작지만 말 많은 자주출판 연구집>(미디어버스)이 있었으므로, 언급된 내용을 추려 말하고는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용이나 방식적 측면으로만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 많아 ‘다른’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독립출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의 질문은 방송사의 카메라가 올 때 이외에는 답할 일이 없다.
정의란 것은 자고로 항상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못하므로, 늘 자신만의 정의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독립출판을 일종의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책을 입고하느냐는 질문에 이 정의가 역할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세워 말하긴 어려우나, 우리 책방에 넣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대부분 태도나 시선이 우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김한민 작가는 『나나 프로젝트5』에서 “그래픽노블은 제게 장르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예요. 그래픽노블은 1970년대 미국에서 만화가들이 기존의 만화와는 다른 걸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금까지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하죠”라며 “이 그래픽노블적인 태도만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라고 했는데, 역시 덕질은 모호했던 것을 명확하게 하기도 하며, 또 세계를 확장해주기도 한다.

 

→ <기획회의> 436호에 게재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 06]  「오늘 책을 팔아 ‘덕력’을 쌓았습니다」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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